[단편/습작] 까치 by 무한일요일

  사실 그 놈의 첫인상은 솔직히 말해서 '별로...'라거나, '그닥...'도 아니었다.
 '최악'이었다.
 처음보는 사람한테도 빙글빙글 웃으며 농담을 툭툭 내뱉는다든가, 친해졌다 싶으면 나이가 한 두살 많아도 금새 반말 비슷하게 하는 꼴이 영 배알이 뒤틀리게 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런 모습이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소극적이거나 내성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나도 꽤 외향적인 성격이라, 사람들과 사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녀석이 세상에 내 딛는 발걸음은 우사인볼트 보다 더 빨랐다.
 무엇보다 항상 여자들틈에 둘러쌓여 히히덕거리는 모습이 짜증났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 녀석이 여자들을 악착같이 쫓아다니며 그런 자리를 유도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들이 그의 곁으로 조금씩 모였다. 더 최악인 것은 여자들에게 화장이 어떻게 됐다느니, 뚱뚱해 보인다느니, 못난이라고 하는 등의 농담도 불쾌했지만, 친해졌다 싶으면 나이가 한 두살 많은 선배들의 손도 덥석덥석 잡고는 만지작 거리기도 하는 꼴이 영 배알이 뒤틀리게 했다. 이 역시, 좀 더 솔질하게 말하면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녀석이 우리 과 학회에 가입한 것은 1학년의 끄트머리에 기말고사를 막 치른 이후, 학회장이 주최한 종강파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창고를 개조해서 겨우 학회실을 마련할 정도로 올해 급하게 새로 만든 학회라, 학회원도 14명 이었는데, 그나마도 4명은 취업을 해버리고, 2명은 4학년이라 시험이 끝나도 놀지 못하고 면접 스터디로 가버려서, 8명만 모여 조촐하게 신세한탄을 안주삼아 맥주와 막걸리를 기울이고 있을 때였다. 신생 학회가 생길거라고는 조금도 생각을 못한 학생회장이 매우 당황한 눈빛으로 학회실을 만들어 준다고 했을 때 예상은 했었지만, 처음 학회실로 이것저것 비품을 갖다 놓을 때는 문도 없었다는 이야기와 기말고사 감독으로 들어온 조교 선배가 너무 예뻐서 시험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간간히 나오고 있었는데, 낡아빠진 창고물건과 곰팡이가 여기저기 피어 있는 벽과는 이질적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새 알루미늄 문이 키로롱~ 뿅뿅 이질적인 소리를 내며 열리고, 더벅머리 녀석이 빙글빙글 웃으며 얼굴을 빼꼼 내밀었었다.
 이미 부회장은 술에 쩔어 넉다운이었고, 다른 선배들이나 동기들은 살짝 의아한 표정으로 놈을 바라보았다. 학회장 선배만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손님 나부랭이를 맞았다.
 "어떻게 오셨죠?"
 아... 그 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녀석의 대답은 가히 똘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걸어 왔는데요! 크하하!!"
 아... 그 때 알아챘어야 했어. 이 '알아챘어야 했어'는 내가 하는 후회가 아니라, 학회장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알아챘어야 했다'는 얘기다. 원래 창고여서 조금 으스스한 것도 있겠지만, 난방시설이 금새 금나와라 뚝딱 되었을리는 없었기때문에 '이브'라고 우리끼리 부르는 소형 난로 하나에 겨우 추위를 녹여가며 학회실에 앉아있던 참에, 녀석의 그 똘기 충만한 농담은 순식간에 빙하기 체험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미 부회장은 잠에 취해 녀석의 말을 못들었고, 다른 선배들이나 동기들은 살짝 의아한 표정으로 놈을 바라보았다. 학회장 선배만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똘기 충만한 신입 회원을 받고 있었다.
 "하하! 재밌는 사람이시네요. 들어와요."
 학회장님, 제정신이십니까... 들어오면서 "실례합니다."도 아니고, "안녕하세요?"도 아니고, "가입하러 왔는데요."도 아니라, 썅, "걸어왔는데요! 크하하"를 지금 가입시키겠다고요?! 부회장님, 부회장사마님, 부회장예수사마님, 부회장전지전능대통령각하님, 썅, 얼렁 일어나 당장 말리지 못해요!

 녀석은 가입하고 이틀만에 학회에서 인기인이 되었고, 사흘만에 대스타가 되었다. 나는 번번히 녀석을 피해버려서, 그 일이 있기까지 이름도 몰랐다.
 창고를 개조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사실 우리 학회실은 굉장히 지저분했는데, 때문에 그해 겨울방학은 세균과 전면전을 벌이는 백혈구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었을만큼 지독한 감기와 함께 시작했다. 이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순해빠진 학회장이나, 술에 매일 쩔어 바이러스도 알코올중독자인게 분명한 부회장이나, 쵸콜릿 중독의 3학년 총무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집행부 3명 중 3명 전원 감기로 시작했으니 바이러스의 신생학회 파괴 공작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지만, 이 때문에 집행부는 방학 중 대청소를 단행했다. 순하고 순한 학회장의 놀라운 결단력이 돋보였지만, 왜 그런 결단력으로 까치머리 그 놈을 안 내쳤는지 원망스러웠다.
 녀석은 가끔은 빗자루질을 하고, 주로 여자들과 수다를 떨었다. 부회장 선배가 가끔 "에헤이~ 신입! 이쪽에 덜 쓸었구마이~"하고 혀꼬부라진 소리로 핀잔을 던지면, 다시 빙글빙글 웃으며
 "우왓! 먼지들의 은폐엄폐가 제 시야로는 못 따라가겠는데요~! 거기 완전 사각지대네!!"
 그러고는 크하하! 한바탕 웃고는 잽싸게 이동해서는 가끔은 빗자루질을 하고, 주로 여자들과 또 수다를 떠는 것이다. 여자들은 또 "은폐엄폐란다~ 깔깔깔~"하고 또 같이 웃는 것이다.
 나는 묵묵히 걸레를 빨아오기도, 쓰레기 봉투를 갈아넣기도 하면서 녀석을 힐끔힐끔 보았을 뿐이었다.

 청소가 끝나고 부학회장의 강력한 권유에, 다시 말같지도 않은 이유로 우리는 뒷풀이 술자리를 벌렸다. 웃긴게, 학회실은 다시 빈병들과 안주들의 포장지, 과자부스러기로 청소하기 전보다 더 지저분해지고 있었다. 분명 그런 느낌이 들었지만, 분명 기분탓일거라 믿고 싶었다. 곧 입대를 앞두고, 피같은 방학 중 하루를 투자해 청소했는데, 그 수고가 헛수고가 아니라고 생각을 해야만 했다.
 "그래, 다들 성적표 인터셉터 할 준비는 다 갖췄니?"
 나른하게 잠이 올 정도의 남자조차 반할만큼 달콤한 매력의 목소리로 학회장 선배가 물었다. 그렇게 달콤한 목소리로 성적 얘기를 할 줄은 몰랐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오늘부터 집배원 아저씨랑 친하게 지내야죠, 뭐."
 그리고 이어지는 하하하! 나 스스로 내가 한 농담에 웃음을 줬다. 학회장 형도 씨익 웃었고, 성실하고 착한 총무 누나도 히히~ 웃어줬고, 부회장 선배는 벌써 술에 쓰러져 있었고, 주위에 다른 여자동기들은 아애 내 농담은 듣지도 않았다는 듯 자기들끼리 딴 얘기를 했지만,
 "크하하!! 집배원이랑 친하게... 크하하!!"
 까치머리 신입생만 호탕하게 웃었다. 동기 사랑으로 내게 준 동정 웃음인가...
 "하하하. 신입, 너는 성적 잘 나왔어?"
 학회장이 아까보다 더 온화하게 녀석에게 물었다. 재잘대던 여자 동기들도 순간 녀석을 바라보았고, 총무누나도 녀석을 바라보았고, 나도 슬쩍 시선을 피하는 척 맥주를 내 잔에 채우면서도 녀석을 힐끔거렸지만, 끝내 부회장 형은 코까지 골았다. 놈은 잠시 뜸을 들어더니,
 "... 형! 아이고, 잔이 비었네. 우리 한 잔 해요! 크하하하!!"
 그리고는 대뜸 학회장 형의 술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기막힌 돌출행동에 학회장 형은 와하하! 웃었고, 총무 누나도 프핫! 웃었고, 여자 동기들이나 선배들도 꺄르르! 웃었고, 분하지만 나도 피식~ 웃었다. 심지어는 부회장 선배도 코를 골며 드르렁~ 웃었다.

 나는 완전히 패배했다.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독한 패배감과 열등감에 가득 쌓여버렸다. 화장실에서 방광을 비워가며, 디스플러스를 물었다. 씨발, 뭐가 그렇게 웃기다는 거야. 여자나 밝히고, 예의도 없고, 무식하고, 더럽고, (이건 내 잘못이지만)이름도 모르겠는 새끼의 덜떨어진 농담이...
 마지막 한방울의 오줌을 털어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입에 문 담배도 부르르 떨렸다. 나는 끄트머리를 살짝 잘근잘근 씹으며 라이터를 찾았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지만, 왜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고, 화를 가라앉힐 방법도 모르겠고, 녀석의 이름은 더 모르겠고, 라이터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입에서 마지막 그 디스플러스는 뚝! 슈웅~ 푸르릉 소리를 내며 오줌의 샘으로 퐁당!
 나의 분노는 이제 후지산을 집앞에 갖다줘도 진정되지 않을만큼 극에 달해버렸지만, 달토끼가 사실은 외계인이 그린 그림이라는 이론만큼이나 허무맹랑하고 근거없고, 화낼 대상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화낼 대상을 찾기위해 일단 집으로 가고 싶었다.
 이제는 비어버린 디스플러스 빈곽을 구깃구깃 잡아, 오승환 돌직구로 쓰레기통에 쳐박았다. 막 그무렵이었다. 익숙한 화장실 문의 열림조차 어색어색하게 삐로롱 헤헷하며 이상한 소리로 열리는 느낌이 들자
 아! 그 때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크하하! 야, 너 오줌 한번 오래 싸는 군햐~! 크헤에~~"
 ... 까치머리였다. 짜증이 엄지발톱부터 단전을 지나 식도를 타고 정수리에서 부들부들, 입에서 덩실덩실 춤추던 디스플러스마냥 떨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담배가 무척이나 고팠다.
 "... 너... 너... 담배 있냐?"
 인정한다. 무척이나 뜬금없이 한 말이었지만, 그만큼 간절했다. 흡연자들은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유격 훈련을 끝내고 힘들어 죽겠는데, PX는 문닫고, 담배는 없는데, 막내의 신분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라면, 진짜 싫어한나머지 몰래 소원수리(군대에서 상급자의 부조리와 폭행 등을 간부들에게 투서로 고발하는 행위)까지 해보았던 그런 고참이 주는 담배마저 땡큐땡큐한 것과 유사했다. 녀석은 잠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먼저, 내가 담배를 피는지부터 물어봐야 예의 아니냐?"
 ... 맞는 말이다. 그러고보니, 비흡연자일 수도 있었겠구나. 분명 생긴걸로는 골초처럼 보이지만, 외모만으로 그런 편견을 가지다니... 아무리 녀석이 싫었지만, 한편으로는 못된 편견을 가졌다고 생각하니 씁쓸해졌다.
 "그렇구나. 미안하다. 당연히 필거라고 생각..."
 "크하하! 당연히 피지! I'm Heavy Smoker!!"
 씨발 장난하나, 이 새끼가... 금니빨 빼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까보다!
 "크하하! 자!"
 녀석은 아는지 모르는지 빙글빙글 웃으며 담배를 건넸다. 저 악마의 웃음에 넘어가서는 안된다. 나는 심하게 경계하며 놈의 오른손에 사뿐히 올려진 말보로 레드 한까치를 집었다. 녀석은 커다란 눈을 생글생글 반짝이며 기뻐했다. 담배를 입에 물자, 녀석은 재빨리 불을 붙여주었다. 조금 당황했지만, 담배가 급했다.
 불을 붙이고 한모금 들이쉬고, 한모금을 내 뱉을 무렵에 놈도 찰칵찰칵 불을 붙이고 있었다. 내게 준 불이 마지막이었는지, 불이 잘 붙지 않았다. 나는 살짝 찡그리며, 내 담배를 다시 놈에게 건넸다.
 "크하하! 쌩큐 쌩큐~!"
 놈은 내 담배로 자신의 다른 담배에 불을 옮겨 붙였다. 후우~ 녀석도 한모금을 불더니 다시 크게 크하하! 웃으며 "너! 친절하구만!"했다. 자기 불로 불을 붙인 내 불을 놈에게 다시 빌려준 이유로 친절하다고 했다. 이상한 놈이다, 역시. 그리고...
담배 맛 한 번 기가 막히게 좋았다.
 까치가 준 한까치의 담배의 가치가 기가 막히게 좋았다.
 "... 너, 이름이 뭐냐?"
 신기하게도 담배 한까치에 나는 마음을 스르르 열었다. 일단 녀석의 이름이 알고 싶어졌고, 녀석과 남은 몇년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스르르 들었다. 동기인데 신입으로 들어와 뻘쭘할지도 모를 녀석을 챙겨주지는 못하고, 오히려 시기하고 질투하느라 이름조차 몰랐다는 생각이 개미 발자국 정도 미안함까지 주기도 했다.
 "크하! 나? 이거 섭섭한걸... 그렇게 어려운 이름은 아닌데... 하긴, 외모와 매치가 잘 안되서 그런가?"
 뭐가 웃긴지 녀석은 실실 웃으며 뜸을 들이더니, 살짝 부끄러워하며 
 "... 오혜성이야! 외인구단 주인공!"
 그리고 또 크하하! 이번에는 나도 풍크핫! 요상하게 웃어버렸다. 설까치!! 이현세의 만화 주인공 실사판을 여기서 만나다니!! 녀석은 내가 왜 웃는지 알겠다는 듯, 머쓱하게 웃으며, 변명했다.
 "하하! 웃기지? 사람들이 이름만 듣고는 많이 웃어. 하지만, 외모는 그닥 안 비슷하니까... 특히 머리가... 하하!"
 아오, 등신! 사실은 헤어스타일이 제일 오혜성과 닮았거든!? 혼자 낄낄 거리며 웃음을 참는둥마는둥하는 참에 혜성이가 손을 내게 내밀었다.
 "야, 근데... 넌 이름이 뭐지?"

 긴 방학이 끝나고 2학년의 새 봄이 밝았다.
 때마침 입영 영장이 나온터라, 마음이 좀 싱숭생숭했지만, 학회실에서 총무 누나를 보자 조금 마음이 나아졌다.
 좋아! 이렇게 좋아진 기분이라면, 이젠 혜성이와도 잘 지낼 수 있어! 어쩐지 - 사실 동기끼리 만나는데 꼭 필요한 것인지는 의문이 들지만 - 용기가 막 생겼다.

 그날 저녁, 전 부회장 선배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개강파티가 다시 거나하게 열렸는데, 온화한 전 회장선배는 이제 바쁘다고 안나왔고, 새로 회장이 된 근육근육 3학년 선배가 한손에 18kg 아령으로 이두근 운동을 하면서 건배를 제의했고, 그 와중에도 우리 여자 동기들은 스마트폰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카카오톡과 고스톱과 엠블랙의 춤을 즐기고 있었지만, 끝내 혜성이는 안보였다.
 나는 총무누나에게 혹시 혜성이에 대해서 아냐고 물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상당히 놀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 걔 사실은 우리 학교 학생도 아니고 재수생이래. 분명 올해에는 여기에 합격해서, 이 학회에 가입한 다음에 잘 지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나봐. 그런데 안타깝게도 올해도 떨어졌다나봐. 왜 사람을 속이고 그랬는지 몰라..."
 누나는 대수롭지는 않지만, 살짝 불쾌하다는 톤으로 건조하게 말했다. 덩달아 내 고막도 건조하게 되었다. 정수리가 간질간질하고 담배가 다시 땡겼다.
 여전히 여학생들은 스마트폰을 했고, 회장은 이제 삼두근 운동을 했고, 전 부회장 선배는 드르렁거렸지만, 끝내 혜성이는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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